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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나의 베프를 소개합니다. 결혼 전 나는 화려한 인간 관계 중심에 있었다. 학교, 직장, 교회 친구들과 폭 넓은 교제를 해왔다. 핸드폰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저장되어 있었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많은 모임과 끊임없는 연락이 오고 갔다. 물론 내가 인기가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강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챙겼다. 그냥 그것이 나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선 제작감독으로, 교회에선 리더로 있다보니 자리가 사람과 행동을 만드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40대로 접어든 지금의 나는? 결론적으로 이제는 관계 안에서 자유하다. 의무적으로 누굴 챙기거나 연락하지 않는다.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그냥 놔둔다. 한 마디로 예전만큼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계속 연락이 되는 사람은.. 더보기
#06. 프리랜서 공연기획자의 일상 엿보기 작년 초반 한 선배의 주관으로 프리랜서 피디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렇게 만난 네 명의 프로듀서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참 멋진 후배들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만남 몇 주 후에 코로나가 터졌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우리들은 순간 갈 길을 잃은 듯 했다. 준비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가 일괄 축소되거나 취소되었다. 나 또한 경단녀를 멋지게 탈출하게 해주었던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코로나라는 거대 장벽을 한 개인이 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속상한 마음을 꾸욱 누르며 버텨냈다. 그러던 차에 피디들 네 명이 뭉치게 되었다. 카카오 프로젝트로 100일간의 삶을, 업무를, 코로나로 인한 상심을 성실히 기록해 나갔다. 우린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 공연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수.. 더보기
#05. 향수병을 달래주었던 그 시절 그 물건 결혼 후 유학 중이던 남편을 따라 약 6년간 미국에 거주했었다. 한 3개월은 좋았다. 치열했던 공연계 생활에 약간은 지쳐있던 터라 미국에서의 삶이 여유롭고 편안했다. 그러나 나의 성향이 워낙 아웃고잉 스타일이었는지 몰라도, 운전 면허 없이 남편 수업이 마칠 때까지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삶이 우울감을 가져다 주었다. 괜시리 우는 날이 많아지고 한국의 공연 소식을 듣거나 교회 공동체 사진이 올라오면 울적해져서 남편 앞에서 눈물을 쏟아지는 날들이 많아졌다. 향수병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공부하고 집에 오면 날 살피기 바빴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고, 근처 바닷가에 데려다주었고, 바람이라도 쐬게 쇼핑몰에 데려다주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마이클스! 이 곳은 문구 덕후인 나에게 천국이었다. 각종 스크랩.. 더보기
#04. 소화 능력 떨어져 서글픈 40대의 하소연 벽돌도 씹어 먹던 때가 있었다. 대학 시절 동아리 모임이 끝나면 뒷풀이로 근처 식당에서 늘 밥을 먹었는데,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을 경쟁자 삼아 그렇게나 먹어댔다. 돌아보니 꽤나 유명한 전설로 내려오는 배틀도 있었다. 한 자리에서 짜장면 먹고 탕수육 실컷 먹고 나서 2, 3차 까지 갔었다는 그 일화. 학교 옆 그 식당을 지날 때면 우리는 무슨 위대한 무용담을 이야기라도 하는 듯 그 날을 회상하기도 했었다. 20대 때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면 1초도 쉬지 않고 자신있게 말할 수 음식들이 있었다. 옥수수, 돈까스, 만두 물론 지금도 이 음식들을 좋아하긴 하나 예전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때만큼의 소화 능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먹는 즐거움이 삶의 절반을 넘어가던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 더보기
#03. 너, 내 동료가 돼라! (feat. 내 마음의 풍금) 오늘의 주제는 그 때 그 사람이다. 그 때 그 사람에 대한 다양한 심상이 떠올라 오늘도 계속 고민한다. 나의 페르소나 속 기억에 남는 그 사람들을 누구로 한정해야 하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떠오르는 사람이 정말 많다. 고맙고 감사한 분들 그득이다. 가끔씩은 힘들게 했어도 서로 보지 말자면서 헤어진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앞에선 내색하진 않았지만 맘 속에서 떠난 보낸 배우는 몇 있지만서도. 무려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창작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의 초연 때 우리 회사는 일을 냈다. 그 해 창작뮤지컬 시상식에 9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어 대상을 포함하여 무려 6개 부분에서 수상을 했다. 좋은 스텝들과 배우들이 함께 해준 덕분도 있지만, 난타의 오프브로드웨이 총괄 책임자로 일하셨던 대표님 덕분에 창작 시.. 더보기
#02. 공연 프로듀서의 플레이 리스트엔 어떤 곡이 있을까? 제목은 거창하지만 사실 난 음악을 그리 즐겨 듣는 편은 아니다. 작곡을 전공했지만 음악의 스펙트럼이 그리 넓지 않고 깊지 않다. 전공인 클래식은 일년에 세 네번 들을까 말까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음악 취향이란 것이 있다. 게다가 너무나 확고하기까지 하다. 나열해보자면, 멜로디와 화성이 예쁜 곡 비교적 단순한 악기 구성의 곡 화려한 기교보다는 담담하게 부른 곡 대중 가수로 치면 커피소년의 곡이 그렇고, 가스펠로 치면 염평안의 앨범이 그렇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음악이 교회에서 듣던 CCM이어서지 않을까 그저 추측만 해볼 뿐이다. https://youtu.be/llXbNnZ_8MI 커피소년 - 블렌딩 너의 쓴 아픔은 내가 감싸줄께 너의 시린 눈물은 내가 닦아줄께 너의 그 웃음은 내가 지켜.. 더보기
#01. 멀티 페르소나의 그녀, 나는 누구인가? 한 때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새하얀 백지를 보면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 공간을 얼른 채워야 한다는, 그것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글쓰기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글은 나랑 상관 없는 것, 잘 쓰는 사람들이나 쓰는 것으로 오해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만은 없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원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만 하는 바로 그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1일간의 글쓰기! 그냥 시작해보는거다, 고고!! 독자들에게 가장 와닿을 수 있는 내 최애 페르소나는 무엇인가? 그야말로 멀티 페르소나 시대이다. 나만 봐도 그렇다. 아내, 엄마, 딸, 며느리, 누나, 형님, 형수님, 대표님, 피디님, 교수님, .. 더보기
꽃 필 자리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새벽) 전체 저장하고 싶은 그런 웹툰이 있다. 인간의 아픔을, 관계의 어려움을, 인생의 오만가지 감정을 잘 그려낸 웹툰. 의 내용을 또 가져왔다. 사실상 아카이빙 개념으로 옮겨놓는 것이라 포스팅이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블로그를 하려는 의지를 표현…ㅋㅋ 할머니가 두리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당연하죠. 혹시 모자란 적 있나? 아니요. 두리야. 할머니가 부탁하나 해도 되나? 무슨 부탁이요? 시방부터는 두리 네가 조금씩 더 강해졌으면 한다. 어떻게 강해져야 해요? 사람들이 많이 약하다는 걸 알고 품어주는 연습을 해야지. 세상에는 꼭 받아야 할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사람도 있단다. 그래서 속에 자갈이, 아니, 바위 덩어리가 콱 박힌 사람들이 있어. 우리 밭도 겉은 멀쩡한데 속에 돌 많은 자리가 있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