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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글쓰기 프로젝트

#07. 나의 베프를 소개합니다.

결혼 전 나는 화려한 인간 관계 중심에 있었다. 학교, 직장, 교회 친구들과 폭 넓은 교제를 해왔다. 핸드폰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저장되어 있었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많은 모임과 끊임없는 연락이 오고 갔다. 물론 내가 인기가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강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챙겼다. 그냥 그것이 나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선 제작감독으로, 교회에선 리더로 있다보니 자리가 사람과 행동을 만드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40대로 접어든 지금의 나는?
결론적으로 이제는 관계 안에서 자유하다. 의무적으로 누굴 챙기거나 연락하지 않는다.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그냥 놔둔다. 한 마디로 예전만큼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계속 연락이 되는 사람은 되는대로, 그렇게 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서운한 맘이나 애닯은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 아니면 나쁜 현상인지 아직은 판단 유보다. 관계에 쏟는 에너지를 나에게로 돌려 삶을 좀 더 알차게 꾸며가는 것이 좋은 반면, 더 이상 어떤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며 알아가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이라 그렇다.

이렇게 관계의 가치관이 폭풍처럼 변해갈 때도 언제든 편하게 전화해서 내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친구가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과에서 만나 동아리 활동을 같이한, 나보다 2살 많은 언니 서주은님이다. (실명 공개! 두둥!!)

사실 1학년 때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같이 다니는 무리가 달라서였다. 2학년 때 같은 동아리에 조인하면서 우리는 같이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종교 동아리였기에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만나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 그녀는 목사님 딸이었고,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난 그녀를 통해 자유함을 배웠고, 그녀는 나를 통해 성실함을 배웠다. 서로 완전 다른 성향의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치열하게 맞춰가는 작업이 있었다. 싸우고, 풀고, 오해하고, 갈등하고, 멀어지고 다시 화해하는 지리멸렬한 시간을 거쳐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단해졌다. 서로의 밑바닥을 보았고, 흑역사와 연애사를 시시콜콜히 나누었고, 상대의 버튼이 무엇인지 알았고, 무엇에 상처가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하게 알아갔다. 여러 갈등을 넘으면서 편안하고 자유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앞에서는 언제든 내 그대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에게 그런 고백을 했다.

네가 내 남편이었으면 좋겠어!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세 형제의 엄마로, 나는 두 아이의 엄마로 지척에 살며 계속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싱글 때 언니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나는 제작감독으로 일하며 같은 업계에서 함께 일했기 때문에 친밀함은 더더욱 쌓여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으면 마음을 쏟아냈다가도 말씀으로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는 관계로 발전해서 더더욱 견고한 관계로 이어져 온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어찌나 감사한 건지 새삼 느끼고 있다. 이 글쓰기를 하면서도 지나온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해준 언니에게 고마움이 막 샘솟네, 이따 아이들 재우고 오랜만에 수다라도 떨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