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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Habits/Musicals

뮤지컬 고스트 US tour 리뷰

곧 한국에서 재연 공연되는 뮤지컬 고스트, 

2014년 초 로드 아일랜드에서 US 투어 중인 공연보고 쓴 리뷰글이며, 이 글은 김해문화전당의 매거진에 실린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영화인가, 뮤지컬인가? 뮤지컬 고스트!

 

바람이 차갑게 불던 늦가을, US 투어중인 뮤지컬 고스트(Ghost)를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를 찾았다. 로드 아일랜드의 주도 프라비던스(Providence)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으로 재직할 때 청계천의 모델로 삼았다는 워터플레이스 파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사람들은 많이 없었지만 높은 빌딩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물이 청계천의 느낌과 많이 비슷했다. 청계천은 아기자기한 반면, 워터플레이스는 배도 다니고 바다와 연결되기도 하는 등 스케일 면에서는 좀 차이가 있다. 청계천에서 석가탄신일 즈음해서 전등축제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서도 미국 10대 축제 가운에 하나인 워터파이어 행사가 열린다. 말 그대로 강가에 불을 놓는 축제인데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꽤 운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스턴에서 1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작고 조용한 도시 프라비던스, 그 시내 도입에 프라비던스 퍼포밍 아트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고요한 도시에 공연 보러 몇이나 올까 싶었는데 공연 시각이 다가오자 극장 앞만 유독 붐비는 것은 조금은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극장도 시즌별 프로그램을 미리 오픈하고 회원제를 통해 관객을 유치하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는데 올 해 라인업을 살펴보니 위키드, 오페라의 유령, 북 오브 몰몬, 에비타, 원스, 고스트, 위 윌 락유, 맨 오브 라만차 등 면면이 화려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같은 작품의 투어라도 보스턴보다는 조금 더 저렴한 까닭인지 타주에서 찾는 사람들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뮤지컬 고스트는 동명의 영화를 무대화한 작품으로 (한국에선 ‘사랑과 영혼’으로 개봉되었다) 영화 고스트로 아카데미 극본상을 탄 브루스 조엘 루빈(Bruce Joel Rubin)이 다시 극작을 맡았고, 뮤지컬 <마틸다>의 매튜 워츄스(Mattew Warchus)가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연출을 맡았다. 2011년 3월에 연국 맨체스터에서 트라이 아웃 공연을 가진 뒤, 그 해 7월 피카딜리 극장에서 초연을 하게 된다. 뛰어난 무대 효과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엇갈린 반응 속에 약 1년 넘짓 500회의 공연을 한 후 막을 내리게 되고, 이듬 해 4월, 몇 장면과 노래들이 수정되거나 대체되고 캐릭터의 감정선을 보강한 뒤 브로드웨이에 올려지게 되지만 역시 4개월 만에 공연 종료를 결정하게 된다. 그 해 토니 어워드에 여우 조연, 무대 디자인, 조명 디자인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줄거리는 영화의 내용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 은행원인 샘과 조각가인 몰리는 사랑하는 연인사이다. 몰리는 샘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동감이야”라는 말뿐이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샘은 죽임을 당하고, 그의 영혼은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떠돌게 된다. 샘은 몰리가 또 다른 위험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고는 심령술사 오다 매를 만나 그녀와 소통하려고 노력하면서 몰리를 끝까지 지키고 난 후 이 세상을 떠난다. 이 영화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유명한 주제가 ‘Unchained melody’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면서 도자기를 빚는 두 연인의 행복한 모습일 것이다. 잔잔하게 감동스러웠던 영화의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뮤지컬을 접했다면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혹은 기대하는 정서와 마주하는 정서의 그 간극에서 적잖이 혼동스러웠을 법하다. 90년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무대 장치와 특수 효과는 스펙타클한 영화를 보는 것 마냥 시각적인 것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반응이 이해가 간다.

공연의 오프닝은 그리 임팩트가 강하지 않게 시작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샘이 죽고 난 이후부터 나타나는 모든 무대 효과들은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요소들을 살펴보면 첫째로는 영상의 사용이다. 3면으로 펼쳐진 LED판이 무대의 배경을 표현하는 데 사실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상부 하부 세트가 시간차에 의해서 정교하게 움직여져야 하는 기존의 뮤지컬 무대와는 달리 이미 입력된 프로그램의 순서에 따라 무대 배경이 순식간에 직장에서 엘리베이터, 지하철에서 월 스트리트의 마천루로 연결되는 전환의 용이함이 있다. 그러나 영상 사용이 모두 효과적이지만은 않았다. 앙상블들의 안무를 영상으로 그대로 재현하여 둘의 조화를 꾀하려한 장면은 오히려 조잡하고 산만한 느낌이 들어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할 수 없는 결과를 낳았고, 자신의 친구 칼이 범인인 걸 안 샘이 절규하는 장면에서 양 옆으로, 그것도 2단으로 샘의 얼굴이 나열되었을 때 난 오히려 배신당한 샘의 분노를 확장하려는 듯한 의도에서 그 장면의 진정성보다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계속되었다. 아마도 과다한 영상의 사용이 관객들이 느꼈으면 했던 감정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여러 가지 특수 효과들이다. 샘의 죽은 영혼이 문을 통과하거나 엔딩 장면에서 홀로그램을 사용하여 영혼이 사라지는 장면, 지하철에서 다른 고스트와 싸우는 장면, 편지가 스스로 접히는 장면, 샘이 공중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 등은 보면서도 신기하긴 했다.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이 되었을까 한참을 머리를 굴린 탓에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영화에서 사용되었던 컴퓨터그래픽보다도 더 세련된 방식으로 촌스럽지도, 유치하지도 않게 무대 위에서 표현해내었다는 것에는 박수를 쳐줄 만 하다. 그 뒤에는 영화 해리포터의 마술 효과를 맡았던 폴 키에브(Paul Kieve)가 있었다. 한국의 무대 스텝들과 무대 효과 노하우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계약에 있었을 정도라니 제작진의 무대에 대한 자부심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마지막으로는 조명이다. 사용된 조명의 양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영혼이 된 샘을 쫓아다니는 푸른색 계열의 조명이었다. 팔로우가 저렇게 정교하게 잘 잡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배우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서 오토 팔로우가 작동하는 것이었다는 것.

뮤지컬 고스트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이렇듯 누구나 할 것 없이 무대 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이야기의 줄거리나 노래, 배우의 캐릭터 등은 오히려 무대를 빛내주기 위한 들러리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영화에서보다 오히려 좋았던 것은 도자기를 빚는 시점이다. 뮤지컬에서는 죽은 샘을 그리워하며 힘겨워하는 몰리가 도자기를 빚을 때 샘이 영혼으로 함께 있는다. 이 때 언체인드 멜로디가 나오는데 대놓고 부르지 않아 살짝 아쉬웠지만 더 애틋하고 슬펐다. 영화에서의 설정이 더 좋았던 것은 오다 매와 샘의 관계이다. 둘은 서로 잘 이해하고 우호적이면서 따스했는데, 뮤지컬에서는 짜증내고 징징대는 사이로 설정한 것이 약간은 아쉽다. 영매술사 오다 매를 쇼 스타퍼로서의 활용하기 위한 기획이었을 것이란 짐작은 해보지만 우피 골드버그의 따스한 눈길이 그립기도 했었다. 한국에서도 오다 매 역을 맡은 최정원, 정영주 배우에 대한 호평이 많이 올라오던데 물론 배우의 힘도 있겠지만 이것은 분명 캐릭터의 힘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한 바탕 신나게 놀고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는 오다 매는 여기에서도 박수를 가장 많이 받는 캐릭터였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가장 보여야 할 두 주인공이 사실 보이지 않았다. 섬세한 감정 연기와 고음의 노래를 소화할 배우였어야 했는데 애초부터 캐스팅이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배우의 음정이 계속해서 불안하고 고음에선 플랫될까 걱정시키더니 결국 그 걱정은 명중하여 엔딩 곡까지 이르렀다. 정말 오다 매가 없었다면 배우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을 뻔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안무가 참 독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곡선보다는 직선의 느낌이 강했던, 로버트의 움직임과 비슷했던. 그래서 뒤에 펼쳐지는 팝 아트적인 영상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느낌이랄까.


https://youtu.be/Sw5a5beiLSw

 


종합해보자면 어느 미국 평론가의 말처럼 오버 프로듀스(Over produce)되었다는 말이 가장 정확할 듯싶다. 약간씩만 톤 다운한다면 더 좋을 법한. 그리고 플롯, 음악, 배우, 무대가 종합적으로 조화를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무대 기술의 진보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얼마 전 한국에서 고스트를 본 기술 스텝 후배가 연락을 해왔다. 그 동안 나는 뭐했나 싶었다면서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늘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스트는 다른 의미에서 또 한 발 앞서 있는 뮤지컬인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가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에 고스트의 다음 행보 또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