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aily Habits/Musicals

뮤지컬 베르테르 후기

관람일시: 2020년 10월 21일 (수) 3시 공연
캐스팅보드: 엄기준/ 김예원/ 박은석/ 최나래/ 송유택

뮤지컬 베르테르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우선 국내 창작뮤지컬이 20년동안 롱런했다는 것에 박수~! 시대가 휙휙 변하는 요즈음, 공연은 사회의 거울이니 내용이나 형식 또한 여러 번 수정 보완되며 현재까지 이어져왔을 것이다. 그 뒤에 숨어있는 기획사와 제작진의 노력에 또 한 번 박수~! 나는 2000년대 중반에 관극했던 기억이 있는데 사실 베르테르 배역에 엄기준이었는지, 민영기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 관극 당시 이렇게 아련한 사랑이 또 있단 말인가.. 생각하며 한 동안 베르테르의 노래를 오랫동안 들었던 기억도 난다.

지난 15주년 기념 공연 이후로 5년만에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온 베르테르! 관련 이슈를 만들기 위해 CJ EMN과 같은 계열사인 tvn에서 ‘더블캐스팅’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앙상블 배우들에게 베르테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최종으로 신예 나현우가 그 자리를 거머쥐었다. 오랫동안 베르테르 역할을 했었던 엄기준 배우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고, 공정성 때문이었는지 실제 베르테르 제작진들은 특별 심사로 잠깐 참여했을 뿐 선택의 주도권이 없었던 것이 아쉽다. 더블 캐스팅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종영되었고, 심지어 심사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아 찝찝하게 끝이 나버렸다.

문제는 그 다음. 초반에 베르테르 역할로 엄기준, 카이, 나현우로 픽스되는 줄 알았던 캐스팅이 유연석과 규현이 추가적으로 합류하면서 국내 뮤지컬 사상 처음일지는 모르겠지만 무려 한 배역에 5명의 배우가 캐스팅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4명까지는 쿼드 캐스팅이라고 부르는데, 대체 5명은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이냐~~! 하면서 아.. 같이 작업하시는 분들 힘들겠다 싶었다. 5명의 합을 계속 맞추어야 하니. 그래도 엄기준과 규현은 한 번 해봤던 캐스팅이니까,, 어떻게든 공연은 올려지겠거니 했었다.


드디어 서울에 갈 시간이 생겨 낮공은 베르테르로, 밤공은 킹키부츠로 하루에 두 탕, 게다가 장르가 전혀 다른 두 극을 관람했다. 공연계는 예전부터 방역을 정말 철저하게 했는데 정말 짜증난다싶을만큼 여러 단계를 거쳐 극장에 입성. 예쁘게 장식해놓은 아트월, 캐스팅 보드, MD 부스 등이 해바라기로 대변되는 주요 오브제를 활용하여 극장 전체를 옐로우 톤으로 유지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베르테르는 롯데를 향한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을 가진 베르테르가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인 감상평을 짧게 적자면, 시대가 변한 건지, 아니면 이 극을 바라보는 나의 상황이 변한건지 몰라도, 10년 전 관람했을 때 보였던 베르테르의 그 애틋함이 현재는 과도한 집착과 스토커적인 망상으로 대변되어 보여 아쉬웠다. 여성의 인권이 중요시되는 현 시대의 흐름도 분명 무시할 수 없을 터이지만 그보다도 보여지는 연기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랩을 하듯이 빠르게 몰아치는 그의 대사와 노래가 호흡이 급하다는 느낌을 주었고, 마음을 대변하고 읖조리는 노래에서조차 발성이나 음향의 볼륨이 고백보다는 겁박에 가까운 포효처럼 들리기도 했다. 롯데에게 약혼자가 있는 사실을 알고난 후의 포즈와, 그래도 내 마음을 다시 한 번 전해보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발하임으로 돌아와서 그녀가 결혼했다는 사실에 정지되었던 그 장면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터졌다는 건... 연출적으로 이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어지럽기도 하였다. 시종일관 불편했던 베르테르의 사랑.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을 때리는 오빠를 보고 살인을 행하고, 결국 사형을 당한 카인즈의 사랑이 오히려 훨씬 설득력있게 느껴지기도.



김예원 롯데는 고음에서 약간 불안해보이기도 했는데, 높은 음을 이쁘게 불러야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어 놀랐고, 흔들리는 롯데를 곁에서 바라보면서 일관된 사랑을 보여주는 알베르트 박은석 또한 괜찮았다. 공연의 마지막 씬, 탕 소리와 함께 빨간 빛으로 물들어가던 조명을 기억하는 나에게는, 이번 버전의 소리 없이 무대가 닫히고 마무리하는 것이 약간은 심심해 보이기도 하였는데, 그것을 해바라기의 쓰러짐으로 형상화 한 것은 또 나름 괜찮았던 장치였다는 생각이 든다.


좌석은 무대 상수쪽에서 중간쯤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배우들의 얼굴 표정이 막 잘보이지 않았지만, 전체 무대를 조망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극의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관객들도 시종일관 분위기에 맞게 차분하고 조용해보였다. 극 중간에 관객석에서 내비 소리가 들려 잠시 웅성되었던 것을 빼면,,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던 공연. 같이 봤던 제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뭐, 이런 공연은 클래식함으로 보는거죠~”하는 말이 계속해서 남는다. 이런 공연도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 있다는 것. 하지만 클래식함을 무기로 배우의 관성화된 연기를 묵인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어쩌면 유연석이나 나현우가 연기하는 베르테르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뭔가 더 풋풋하고 아련함이 있을 것 같은 생각 말이지.

막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좌석 띄어앉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평일 낮공, 가득찬 극장을 보며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진다. 곧 풀로 채우고 공연할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