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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Work/경단녀 탈출기

나의 경단녀 탈출기(5)


그렇게 한 학기 즐겁게 강의를 하고 이제는 진짜 일을 찾아나서야 했다. 대전은 뮤지컬이나 연극을 자체 제작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상업 연극을 중심으로 공연하는 극장은 더러 있었으나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기획사는 전무했다.

고민하던 중, 대전 예술의 전당의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했으나 국공립단체에서의 근무 경력이 부족하여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고 만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민간 기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메인 스트림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타면서까지의 경력이 있는데도 국공립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만다.

“그래, 까짓것 부족한 3개월 만들어오면 되지! “
(서울예술단에서 9개월 일한 경력이 있어서 1년을 채우기 위해선 딱 3개월이 부족했었음)

그런데 진짜 신기하게도 대전문화재단에서 딱 3개월짜리 기간제 직원을 뽑길래 지원했고, 최종합격하게 되어 일하게 되었다.

공연기획과는 전혀 다른 분야. 예술교육 분야의 행정 업무를 하는 것이었는데, 욱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에서도 배울 점은 분명 있었다.

민간 회사와 국공립단체의 다른 점은, 작성해야 하는 서류의 양에 있다. 진짜 국공립단체는 서류를 위한 서류를 만드는 느낌. 절차의 무결이 검증되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서류를 만들고, 한 장의 서류를 만들면 그 앞에, 또 그 앞에 붙는 서류들이 계속 딸려 나오는 시스템. 일을 확실히 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이래서 정말 일은 언제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서류 작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정작 필요한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지역의 예술계를 활성화 시키는 일에서, 즉 현장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현장이 없는 업무는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3개월을 채우고 대전 예술의 전당에 지원하려고 보니 그 새 지원 자격이 바뀐 것, 극장에서 공연기획 일을 해본 사람으로 자격이 변경되어 버렸다. 너무 힘이 빠져 한 동안 패닉에 빠져있었다만, 뭐 대전이 어려우면 서울로 가보지 뭐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또 다른 대학교에서 강의 제안이 들어온다.

내 마음의 풍금에서 같이 작업했던 김문정 감독님이 교수로 계신 학교인데 다른 통로를 통해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1년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2019년을 맞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학교에서 여러 개의 강의가 또 들어온다. 일주일 내내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과 소통하며 즐겁게 보냈는데, 내 안에 자꾸 뭔가 갈증이 느껴진다. 그 마음이... 내겐 너무 아팠던 것 같다.

호원대 공연예술학부 학생들
한세대 공연예술학과 학생들


가끔 서울에 뮤지컬을 보러 가서 막이 오르고 오프닝 곡이 연주되면 그렇게나 우는 거다. 왜 울지? 당황한 내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알아차린다. 아.. 이 곳이 그립구나. 이 곳으로 돌아오고 싶구나..

강의 준비 하느라 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못했는데,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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