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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Habits/Book

아직도 가야할 길 by M.스캇펙 <은총 편>문장 수집

드디어 마지막 편,
내가 꺼내어 보기 위해 하는 포스팅^^


건강의 기적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기 삶에서 재난이 반복적으로 스쳐 지나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난 사고보다 일어날 뻔한 사고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생존 방식 또는 사고에 대한 방어 능력은 개인의 의식적인 판단 결과가 아님을 깨닫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무의식의 기적

그러나 이런 감정은 왜 무의식 속에 처음 생겨났을까? 이것들은 왜 억압되었을까? 대답은 의식이 원치 않았기 떄문이다. 그리고 자기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때문이다... 의식이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또 그에 따르는 고통의 감수를 외면함으로써 그것들을 저 너머의 어두운 곳으로 밀어넣으려는 바로 그것이다.

영적인 발달 과정에서 핵심적이고 주된 과제는 자기가 의식하는 자기 모습을 실제의 그것과 일치시켜가는 일이다. 이 평생의 과업이 심리 치료를 통해 효과적으로 비교적 빨리 성취되어갈 때 사람들은 종종 ‘새로 태어난’ 느낌을 받는다.


우연한 깨달음이라는 기적

은총은 일부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소중하고 바람직한 것’에 의해 나타나며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것,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용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4부의 주제다.

우리는 스스로 애써 구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것이다. 원하지 않았던 선물이 주어지면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듯이 말이다.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느껴지는 점에서는 특별하지만, 이렇게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은혜로운 사건들이 실제로 주변에서 늘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평범하다.


은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의식 세계 바깥에서 생겨나 인간의 영적 성장을 돕는 강력한 힘이다.


진화의 기적

영적 성장은 쉬운 길을 가고 싶은, 낡은 지도나 관행에 집착하려는, 변화를 싫어하는 본능 등을 극복하고, 습성을 유지하려는 자연의 저항을 이겨내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구절이 좋아 애플펜슬로 필사해보았다~


모든 사람은 각기 자기 나름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닌다. 그리고 그 욕구를 실현시키려 할 때는 혼자 힘으로 스스로의 저항과 싸워야 한다.

이미 성숙한 사람들은 그 성숙의 열매를 혼자 맛보지 않고 세계와 나눈다. 한 개체로서 진화했지만 우리는 등에 인류 전체를 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인류도 진화한다.

그러면 개인과 인류 전체의 등을 떠밀어, 무기력이라는 본능적인 저항을 이기고 성장하게 하는 이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이 힘에 이름을 붙였다. 사랑이라고. 나는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성장한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드높인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다른 사람들 또한 드높인다. 자아의 확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랑은 바로 진화의 행위다.


알파와 오메가

하느님이 바로 진화시키는 힘의 원천이자 도착지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은 알파며 오메가라고 말하는 의미다. 하느님은 시작이자 끝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 이 믿음은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모든 가능성을 시도할 의무를 지운다.

이 믿음을 따르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 향상과 영적 성장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기를 게을리 할 수 없다.

하느님이 자신처럼 성장하도록 인간을 적극적으로 양육한다는 사상은 우리의 하여금 자신의 게으름에 직면하게 한다.


엔트로피, 게으름 그리고 원죄

이 책은 영적 성장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그 반대 측면인 영혼의 성숙을 방해하는 것들도 다루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오직 단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게으름이다.

죄의 본질은 바로 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있다. 즉, 논쟁의 단계를 생략해버린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뱀과 하느님 사이에 논쟁을 붙였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 하느님 쪽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뱀과 하느님 사이의 논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선과 악의 갈등을 상징한다. 마음 속에서 선과 악 사이의 논쟁을 붙여보려고 하지 않는 - 또는 힘을 다하여 싸우지 않는 - 그 태도가 바로 죄는 짓는 원인이다.

자기 내면 안에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일종의 일이다.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가 그 일을 진지하게 수행한다면 - 그래서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따르고자 한다면 - 우리 앞에는 좀 더 험난하고 수고로운 가시밭길이 나타나게 된다. 논쟁을 벌이는 것, 즉 심사숙고한다는 것은 고통과 투쟁의 길로 들어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원죄는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의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실재하는 현실이다.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이다.

모든 두려움이 다 게으름은 아니지만 두려움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게으름이 원인이다. 즉,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따른 두려움, 현재의 위치에서 더 나아가면 무언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자기 속의 게으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게으름을 줄여 나가는 첫걸음이다.


악이란 무엇인가

보통의 게으름이란 그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들은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사랑 없음의 한 표현일 뿐 아직 악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악이란 영적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자아 확장을 회피하려는 정치적 권력 행사 - 노골적이거나 은근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 라고 본다. 단순한 게으름은 사랑이 아닌 것에 불과하지만 악은 사랑을 막는 것이다.

악에 대한 자각은 우리 자신을 정화시키는 출발 신호다.


의식의 진화

게으름의 자각은 영적 진보를 가늠하는 잣대다.

의식적 결정을 통해 이 세상이 그 분의 의지에 따르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느님 은총의 대행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은총의 한 형태가 될 것이고, 인간 속에서 그 분을 위해 일하며, 사랑이 없던 곳에 사랑을 심고, 이웃을 우리와 같은 수준의 앎으로 인도하며, 인류의 진보 수준을 끌어올릴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확신에 차 있을 때 오히려 어둠 속에 있고, 가장 혼란스럽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빛 속에 있을 때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또 다른 더 큰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과 교감하는 즐거움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동참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의 본질과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의 동기, 결과 및 파급효과에 관해 완전히 앎을 얻게 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에게만 기대할 수 있었던 수준의 앎에 도달한다. 우리의 의식적 자아는 하나님의 정신과 결합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처럼 아는 것이다.

하느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교감이 있는 것이다.

영적인 힘이란 단순한 앎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더 위대한 앎의 경지로 나아가면서도 여전히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은총과 정신 질환: 오레스테스의 신화

자신의 어떤 증상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때조차도 대개는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바깥 세상에 - 무관심한 친척, 가짜 친구, 탐욕스로운 기업, 병든 사회, 심지어 운명에게조차 - 책임을 전가한다. 자신의 증상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소수만이 자기 영혼의 혼란이 겉으로 드러난 것임을 깨닫고 무의식이 주는 메시지와 그 은총을 수용하여 치료에 따르는 고통을 감수한다.


은총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랑이란 영적 성장을 위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의지다. 이 정의에 따르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곧 성장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은총의 부름을 받지만, 오직 소수의 사람들이 그 부른에 귀 기울인다”라고 풀이하고 싶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왜 극소수 사람들만이 은총의 부름에 귀 기울이는가?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다. 그것은 우리의 게으름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썼다. “사랑할 수 있고 부지런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은총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러나 보답을 받으려는 원초적 욕망 없이 자신과 타인을 잘 보살핀다면 우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것이다.

수동성과 의존성. 두려움과 게으름 때문에 가야 할 길을 속속들이 미리 보기를 원하며, 매 발걸음이 안전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영적 성장의 여행은 용기와 주체성, 생각과 행동에서의 독립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길은 반드시 혼자 가야 한다.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구절을 필사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