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aily Habits/Book

'아주 보통의 행복' 문장수집

핸드폰 메모란을 쭉 보다가 예전에 적어놓은 책의 문장 수집이 있어서 다시 봤더니 너무 좋은거다! 

그래서 옮겨적는 최인철의 '아주 보통의 행복' 문장수집 편 시작합니다! 


- 아쉽게도 코로나 19로 인한 지금의 일상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단조롭다. 시간에 리듬이 없고, 맺고 끊는 맛이 없다. 자연적 시간만 존재할 뿐, 의미의 시간은 멈춰 섰다. 



오해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생겨난다. 타인의 선한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을 거라고 해석한다. 타인의 좋지 않은 행동은 돌발적인 상황 때문에 생긴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과 의도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해석한다. 이것이 오해의 본질이다. 


갈등 자체보다 갈등이 만들어내는 자극의 과잉이 싫기 때문이다. 



- 그가 새해 결심을 안 하기로 한 이유는 새해 결심이 주는 부작용 때문이다. 새해부터 잘하자는 결심과 새해부터 잘하면 된다는 위안을 핑계 삼아 12월의 남은 며칠을 쉽게 보내버리는 부작용. 마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를 외치며 오늘을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처럼, 새해 결심은 늘 12월의 남은 날을 대충 살아도 되는 날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 나이가 들수록 성과가 줄어드는 이유는 나이 자체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노력을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 나이가 들수록 상대를 아는 데 필요한 정보량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상대를 안다는 확신이 커지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져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져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연습 방법은 내가 질 수 밖에 없는 영역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초보인 영역에 직접 들어가 고수나 스승들을 만나봐야 한다. 내 삶에 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 영역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사회적 거리두기 행위들의 공통점은 이동의 제한이다. 개인이 활용하는 공간의 범위가 축소되고, 국가들은 저마다 국경을 닫는다. 이동을 꿈꾸는 자들의 꿈은 유보되고, 다른 문화와의 접촉은 죄악시되기까지 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경계하고, 집이 아닌 공간들을 회피하게 된다. 이동성의 쇠퇴는 물리적 폐쇄성을 유발하고, 물리적 폐쇄성은 필연적으로 의식의 폐쇄성을 가져온다. 외집단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고, 내집단에 대한 응집이 공고해진다. 강력한 규범을 지배 원리로 하는 집단 주의 문화가 생겨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제한되고 침해받는다. 개성보다는 생존이, 개방성보다는 폐쇄성이 의식의 지배 원리로 자리한다. 그러다보면 개인 중심의 도덕보다는 집단 중심의 도덕이 우세해 집단에 대한 충성과 권위에 대한 복종이 요구된다. 급기야 외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정당화되기 시작한다. 개인과 사회 모두 다른 사람과 다른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염병이 마음의 유일한 기원은 아니다. 그러나 전염병이 우리의 의식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나면 코로나19 이후 결코 등한시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마음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의식의 개방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국경을 넘나들어야 한다. 현관을 개방하고 친구들을 초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단에 근거한 편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위축된 개인의 권리와 개성을 회복해야 한다. 영화관으로, 미술관으로, 콘서트장으로 재빠르게 내달려야 한다. 의식의 폐쇄성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감염시키는 위험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 구체적 예측의 가치는 틀릴 수 있음에 있다. 틀려야 더 나은 구체적 예측들이 등장한다. 오류가 사유를 낳는 법, 안전한 예측에는 사유가 뒤따르지 않는다. 예측은 어렵고 설명은 쉽다. 그래서 우리의 예측은 두루뭉술하지만 우리의 설명은 확신으로 가득하다. 이 둘이 바뀌어야 한다. 예측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설명은 겸손해야 한다. 예측하려는 자는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맙다’라는 일본어 ‘아리가토’의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각은 속도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은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다. 빠른 생각보다 뚝심 있는 생각이 이긴다. 생각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오랜 화두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저력이 있다.